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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이야기/재미있는 돈 이야기

[시론] 지갑 속 백범을 꿈꾸며

by 금빛화폐연구소 2007. 4. 11.

 

13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시정부) 수립 88주년을 맞는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존재의 원천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로 시작되는 헌법 전문에서 존재 이유가 나타난다. 

 

새삼 임시정부를 거론하는 것은 5만원, 10만원의 고액권 발행계획이 알려지면서 새 지폐 도안에 어떤 인물을 넣을 것인가를 두고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기 때문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화폐 도안의 인물은 세종대왕(1만원권), 율곡(5000원권), 퇴계(1000원권), 이순신 장군(100원 동전) 등 조선왕조 시대에 유학과 한글창제 등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물과 국난극복 영웅의 초상이다. 모두 국민이 존경하는 민족사의 뚜렷한 인물들이다.

-화폐도안 조선시대 영웅뿐-

그런데 문제는 화폐 도안 인물이 모두 조선왕조에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숨쉬고 사는 대한민국과 관련된 인물이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왕조시대의 인물만 화폐 도안의 초상화로 선정된 것은 그분들의 업적과 위덕과는 상관없이 문제가 없지 않다. 4000년의 민족국가에서 한 왕조의 인물들로만 한정한 것은 면면한 민족사의 맥이 단절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우리 근현대사는 외적의 침략으로 40년의 혹독한 식민통치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선열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싸웠다. 임시정부는 항일투쟁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의 모태가 되었다.

백범 김구는 임시정부의 상징적 인물이다. 임시정부가 27년 동안 중원 천지를 돌며 일제와 싸울 때 백범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비롯해 광복군창군, 일제에 선전포고, 좌우합작, 장제스(張介石)을 통한 최초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카이로선언의 역할, 건국강령 마련 등 백범의 역할을 필설로 다 하기 어렵다. 마땅히 독립운동가를 화폐에 넣어야 하고 백범이 1순위라는 데 많은 국민이 동의할 것이다.

새 고액권 화폐는 경제적 의미만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도 지닐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화폐 도안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외적의 침략을 받은 나라나 신생독립국가에서는 독립운동지도자를 화폐의 인물로 삼는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인도의 간디, 필리핀의 호세 리살, 베트남의 호찌민, 프랑스의 드골, 대만의 쑨원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화폐 속의 인물은 역사성과 정통성의 표상이어야 한다. 국가의 정체성과 시대정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백범이 적합하다. 그의 생애는 바로 민족의 자주독립, 그것이었다. 동학혁명·계몽운동·신교육운동·독립투쟁·통일정부수립운동으로 이어진 삶은 오늘 대한민국의 여정을 압축한다. 유교·동학·기독교·불교·천주교의 역정은 백범의 초교파주의를 상징한다. 임시정부의 좌우합작과 해방 뒤 통일정부수립 주장은 대한민국의 현실적 과제로 통한다. 해방공간에서 제기한 문화국가건설론은 한류와 정보기술(IT) 산업이 보여주듯이 예언자적 미래상이다.

-새 화폐엔 독립운동가 어떨까-

상민으로 태어나 임시정부 주석에 오를 만큼 신분에 있어서도 자유민주주의 현대적 가치와 부합한다. 국민의 지지와 선호도에 있어서도 으뜸이다. 청소년들과 일반국민, 정치인들의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백범이다. 역대 대통령과 후보 중에서도 백범은 항상 윗자리를 차지했다.

계층이나 지역, 당파나 이념적 차이를 넘어 보편적으로 국민이 가장 존경하고 숭모하는 백범을 새 화폐의 인물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화해 협력과 평화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백범의 화폐’는 경제외적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새 고액권의 발행이 예상되는 2009년은 백범 서거 60주년이 되는 해로서 그 시기적 의미도 대단히 높다. 바르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면 반드시 성공하고 존경받게 된다는 교육적 효과도 클 것이다 .백범의 삶은 바로 국민교육의 사표가 되고도 남는다.


〈김상웅/독립기념관장〉